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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로리의 ‘침묵’은 말보다 무거웠다 (침묵, 외침, 해방)

by 블링블랑 2025. 3. 20.

더 글로리 관련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The Glory)’는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의 복수극이라는 외형을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말보다 무거운 ‘침묵’의 상징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폭력을 당할 때 침묵한 사람들, 외면한 사회, 자신의 고통조차 말하지 못한 피해자. 이 드라마는 ‘침묵’을 단순한 정적이 아닌 가장 강력한 감정의 언어로 승화시키며 시청자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합니다. 본문에서는 ‘더 글로리’ 속 침묵의 의미와 그것이 외침으로 전환되는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한 해방의 메시지를 살펴봅니다.

침묵: 말하지 못하는 자의 고통

‘더 글로리’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은 오히려 말이 없는 순간에 전달됩니다. 문동은은 폭력을 당하면서도 한 번도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소리치지 않고, 울부짖지도 않으며, 교실에서 당한 수치스러운 고문을 침묵 속에서 견뎌냅니다. 이러한 침묵은 단지 말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스스로 감정을 닫은 상태입니다.

현실에서도 많은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외부에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뚜렷합니다. 말해도 믿어주지 않고, 말해도 바뀌지 않으며, 말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문동은의 침묵은 그런 현실을 대변합니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안에서 점점 메말라 가는 감정들이 그녀의 표정과 눈빛에 녹아 있습니다.

드라마는 이 침묵을 시각적으로도 강조합니다. 초반 회차에서 문동은이 홀로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들, 어떤 말도 없이 피아노를 치거나 벽에 낙서를 하는 장면들은 말보다 훨씬 강력한 정서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말이 없어도, 말하지 않아도, 시청자는 문동은이 느끼는 고통의 깊이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더 글로리’는 침묵이 단순한 정지 상태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자의 저항이자 절규임을 보여줍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폭력의 흔적입니다.

외침: 침묵이 무너지는 순간의 파열음

하지만 문동은은 영원히 침묵 속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 침묵을 복수라는 형태의 외침으로 바꿔나갑니다. 그 시작은 단순한 메모와 관찰이었고, 점차 가해자 주변 인물들을 하나하나 건드리며 조용한 외침을 시작합니다. 이 외침은 대사보다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무너져야 할 사람들에게 조용히 경고하고, 그들의 일상을 흔들며, 마침내 진실이라는 큰 소리를 던집니다.

침묵이 깨지는 순간은 극적이지 않지만 강렬합니다. 동은은 가해자들에게 직접 큰 소리로 복수를 선언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치밀하게, 마치 수십 년간 응축된 감정의 힘을 밀도 있게 조율하듯 움직입니다. 이 방식은 드라마의 서사를 더욱 긴장감 있게 만들고, 시청자에게 더 큰 몰입을 유도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외침이 단순히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동은의 복수는 그녀의 내면에 쌓인 모든 상처와, 침묵 속에서 외면당한 시간에 대한 철저한 대응입니다. 그 외침은 가해자들에게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침묵했던 사회 전체에게도 향한 것입니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동은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며, 조용했던 목소리는 점차 공명합니다. 주여정, 강현남, 하도영처럼 그녀의 침묵을 이해하고, 말하지 않아도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동은의 외침은 점점 더 사적 복수를 넘어선 사회적 울림으로 확장됩니다.

해방: 말할 수 있음의 자유

결국 ‘더 글로리’가 도달하는 감정적 정점은 바로 ‘해방’입니다. 문동은은 복수를 통해 단지 가해자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회복하는 것에 더 가까워집니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까 봐 삼켰던 감정, 그 모든 것들이 복수를 계기로 다시 떠오릅니다.

주여정과의 관계, 자신을 도운 인물들과의 연대는 단순히 복수의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문동은이 처음으로 감정을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말로 설명하고, 누군가 그 말을 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치유를 시작합니다.

이 해방은 단지 문동은의 해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침묵하고 있진 않았는가?”, “당신은 누군가의 외침을 외면하진 않았는가?”라고. 해방은 피해자만이 얻는 결과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에 비로소 가능한 감정이라는 점을 드라마는 조용히 말해줍니다.

마지막 회에서 문동은이 처음으로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 해방의 완성을 상징합니다. 그녀는 복수를 통해 분노를 해소한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존재에서 말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한 것입니다. 그 변화는 곧,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더 글로리’는 침묵을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감정의 언어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문동은의 침묵은 고통이었고, 저항이었으며, 결국 외침과 해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자의 감정을 어떻게 사회가 짓밟아왔는지를 고발하고,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아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은 ‘문동은’을 침묵 속에 두고 있을까요? 그들의 침묵은 말보다 무겁고, 그래서 더 절실하게 들어야 할 언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