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전형적인 청춘 성장 서사를 따르면서도, 현대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과 불평등, 그리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감정의 힘과 연대를 날카롭게 조명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박새로이는 분노를 원동력 삼아 정의를 실현하려 하고, 조이서와 단밤 멤버들은 저마다의 상처와 이유로 그에게 동참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 드라마가 어떻게 ‘감정’을 단순한 감상이 아닌 행동과 변화의 에너지로 확장했는지, ‘분노’, ‘정의감’, ‘팀워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분노: 부조리에 반응하는 인간 본능
《이태원 클라쓰》의 출발점은 분노입니다. 그것도 막연한 분노가 아닌, 명백한 부조리 앞에서의 저항에서 비롯된 분노입니다. 아버지를 부당하게 해고한 장가 회장 장대희에게 맞서다가 퇴학을 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는 순간부터 박새로이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궤도로 움직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분노는 감정의 폭발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갑고 단단하게 가라앉아, 행동의 동력으로 기능합니다. 박새로이는 분노를 단순한 분출로 끝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웁니다. 이처럼 ‘분노’가 감정의 끝이 아닌 시작점으로 기능하는 구조는 이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분노는 시청자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현실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불공정과 비슷한 상황 속에서 박새로이의 대응 방식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내가 당한 만큼 돌려줄 것”이 아닌 “이겨서 보여줄 것”이라는 방향성을 가집니다. 그가 단밤 포차를 열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확장하며 장가를 넘어서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과정은, 분노의 감정이 얼마나 강력한 추진력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박새로이의 분노는 파괴가 아닌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됩니다. 이로 인해 이태원 클라쓰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감정이 성장과 변화를 이끄는 성장 서사로 진화하게 됩니다.
정의감: 원칙을 지키는 사람의 고집
박새로이는 드라마 내내 “원칙”과 “소신”을 강조합니다. 그는 타협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않으며, 정직함을 무기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태도는 겉보기에 고집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정의감에 기반한 확고한 가치관입니다. 그는 단순히 복수심에 불타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세상을 움직이려는 인물입니다.
이 정의감은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조이서, 마현이, 김토니, 최승권 등 단밤 멤버들도 점차 박새로이의 신념을 공유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각자의 이유로 단밤에 합류한 그들이지만, 박새로이의 정의롭고 흔들림 없는 태도에 감화되어 공동의 방향성을 갖게 되는 과정은 드라마의 핵심 성장 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조이서는 천재적인 전략가이지만, 기존에는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새로이를 통해 정의가 허황된 이상이 아니며,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녀의 변화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정의감이 전염되고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정의는 절대 선이 아닙니다. 박새로이 역시 때로는 판단이 흐려지고 감정에 휘둘리지만, 그는 실수 후에도 자신의 원칙을 되돌아보고 다시 세웁니다. 이처럼 《이태원 클라쓰》는 정의감이란 이상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에서 확인되는 태도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힘은, 타협하지 않음에서 비롯됩니다.
팀워크: 각자의 이유가 모여 하나의 목표로
《이태원 클라쓰》는 ‘혼자서 강한 사람’이 아닌, 함께해서 더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단밤의 멤버들은 외형적으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각자의 상처와 목적,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 모여 점점 하나의 팀으로 성장해 갑니다.
처음에는 마현이의 트랜스젠더 정체성, 김토니의 혼혈 배경, 최승권의 전과 기록 등 사회적으로 ‘주류’가 아니었던 이들이 박새로이의 태도를 통해 자신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이해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연대합니다. 이 팀워크는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관계의 힘으로 구축됩니다.
드라마는 팀워크를 이상적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갈등이 있고, 실수가 있으며, 오해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단밤의 구성원들은 회피하지 않고 부딪히며 조율합니다. 이는 진짜 팀워크가 단순한 ‘화합’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 속에서 단단해지는 유대임을 보여줍니다.
박새로이의 리더십은 이 팀워크의 중심입니다. 그는 모두를 이끌기보다는, 각자의 역할을 인정하고 신뢰합니다. 그 신뢰가 단밤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고, 이는 곧 불공정한 세상 속에서 자신들만의 공정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결과적으로 단밤의 팀워크는 단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아닌, 서로의 삶을 지지하는 관계로 확장되며, 이 연대는 장가라는 공룡 기업과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결론: 감정은 약점이 아닌 가장 큰 무기
《이태원 클라쓰》는 감정이 흔히 약점으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감정이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강력하게 보여준 드라마입니다. 박새로이의 분노는 싸움의 시작이 되었고, 정의감은 그 길을 지탱하는 힘이었으며, 팀워크는 그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동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배웁니다. 감정은 억누를 대상이 아니라, 올바르게 다뤄질 때 삶을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느껴질 때, 감정을 외면하기보다 그것을 행동으로 바꾸고, 관계로 이어가며,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희망을 봅니다.
결국 《이태원 클라쓰》는 단순한 ‘청춘 복수극’이 아니라, 감정을 통제하지 않고 존중하고 활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방향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입니다.